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석기 시대 (문단 편집) ==== 석기의 등장 ==== >뗀석기에는 행위에 의식과 목적이 있다.[* 들판의 돌멩이와 달리 뗀석기는 만들 때 어떻게, 왜 만드는지 정하고 깨뜨렸단 뜻이다.]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4: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는 2015년 케냐 로메퀴에서 발견된 330만 년 전 석기이다. [[https://www.smithsonianmag.com/science-nature/oldest-known-stone-tools-unearthed-kenya-180955341/|#]] 하지만 호모종이 만든 것은 아니라고 추측한다고 한다. 이 시대에 사용된 석기는 뗀석기(= 타제석기, 打製石器)[* 돌을 서로 후려쳐서 파편이 '''떼어져 나가서''' 만들어진 석기라는 뜻이다. 그래서 [[주먹도끼]] 같은 걸 보면 어지간한 생명체는 죽일 것처럼 생겼다.]를 사용하였으며, 전문가가 아니면 이것이 그냥 돌인지 석기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전문가는 타격법과 가압법을 구분해 가공 여부를 정확히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긁개를 두고 '''59개''' 유형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전기 구석기일수록 돌을 좌우로 나누었을 때 그 대칭이 명확한 편이다. [youtube(cNn8ujT6Fgg)] 유튜브 뗀석기 만드는 법. 9:20 구간에 보면 진짜 돌칼을 만든다. 좌우 대칭의 개념이 생겨 적극적으로 도구에 적용시킨 시대이다. 이 '도구의 좌우 대칭' 개념은 다음 시대로 넘어가 신석기 시대의 간석기 → 청동기 시대의 동검 → 철기 시대의 철검으로 계승되었고, 현대인이 사용하는 도구에도 이 개념은 녹아 있다. || [[파일:attachment/석기 시대/Biface.jpg|height=200]] ||<|2> → || [[파일:attachment/석기 시대/Clovis.jpg|height=200]] ||<|2> → || [[파일:attachment/석기 시대/Blade.jpg|height=200]] ||<|2> → || [[파일:attachment/석기 시대/Bronze.jpg|height=200]] || || 주먹도끼 || 클로비스 찌르개 || 청동기 시대 간돌칼 || [[비파형 동검]] || 보통 구석기 시대 돌도끼를 상상하면 [[나무]]에 묶은 돌을 연상하는데, 사실 나무라는 손잡이가 달린 경우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 가서야 등장한다. 전기 구석기 시대는 돌 하나를 [[맥가이버칼]]처럼 전천후 기능으로 사용했지만,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점점 석기 하나당 1~2가지 용도로 썼다. 가장 오래된 석기군은 올도완 석기. 석기 시대이기 때문에 이름처럼 석기를 주로 이용하였지만, 뼈나 뿔, 상아 같이 단단한 물질도 제법 많이 사용되었으며, 해안가 지역에서는 넓적한 조개 껍데기를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나 부수면 날카롭게 갈라지며,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하기 쉬운 [[흑요석]]은 주요한 무기 자원으로 거래되었다.[* 추리물에서 트릭이나 흉기로 쓰일 만큼 위력적인 암석이다.] 흑요석은 산출지가 한정되었고 성분에 따라 산출지를 쉽게 특정할 수 있는데, 산출지 주변뿐 아니라 오늘날의 국경을 넘어 먼 지역에서도 흑요석 유물이 발견되기 때문에,[* [[규슈]]에서 생산된 흑요석이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되며, [[백두산]]에서 생산된 흑요석이 [[대구]]에서 출토된 경우가 있다.] 구석기 시대에도 오늘날의 국제교역 같은 장거리 지역 간 이동이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 시대의 석기의 용도는 일반적으로 사냥이나 전쟁을 위한 무기나, 고기나 곡물 등 식량이나, 가죽 옷감의 가공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실제 구석기 유물을 현미경 등으로 조사해보면 의외로 마모흔 등 많이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그 당시 석기는 일상에 널리 쓰기에는 상당한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석기가 권위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일종의 장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청동기 시대 무덤에서 발견되는 위 사진의 돌칼도 그 형태가 실용적 목적보다는 장식용이다. 청동기도 실제 생활 도구로서 보다는 권위의 과시 등의 용도가 더 일반적이 었다. 철기 시대에 와서야 철기가 농경도구 등 일상용구로 널리 쓰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선 당연히 모양을 잡아 만들어놓은 '완제품' 석기 유물을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지만,[* '석기 제작의 흔적'이 발견되어도 완성품이 있어야 어떤 것을 만들고 썼는지 확실히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그 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인들에겐 석기 자체보다 석기를 만들 '몸돌'이 더 중요한 물품이었다고 한다. 돌의 조각을 떼어낸 도구 특히 얇게 떼어낸 날붙이 같은 것이 사실 그렇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따라서 완성품 석기는 기본적으로 몇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에 가깝고, 계속 석기로 쓸 조각을 떼어낼 질 좋은 몸돌 쪽이 구석기인들에겐 더 중요한 물건이었다. 구석기인들은 실제로는 아예 몸돌을 갖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석편을 떼어내 사용했다고도 한다.[* 석편을 이어붙여 원석을 복원하는 접합 연구가 활발한 일본의 경우 짧게는 수십 미터에서 길게는 킬로미터 단위로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석기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따진다면 장신구 같은 것은 동물의 뼈나 조개껍질은 물론 심지어 돌도 갈아서 만들던 구석기인들이 '갈아서 만든 도구'는 쓰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구석기 시대 인류가 '실용품' 부분에는 '장인정신'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대표적인 물건이 바로 '돌화살촉'. [[Mythbusters]]에도 나온 것이지만, 돌화살촉을 단 화살과 그냥 나무를 뾰족하게 깎아 불로 구워 단단하게 만든 훨씬 간단한 화살을 비교해봤더니 사냥에 필요한 실제 성능에선 거의 아무 차이가 없었다는 것. 그래서 내린 결론은 '돌화살촉은 실제로 더 성능이 좋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과시용 물품에 해당할지도 모른다.'였다. 물론 위에서도 등장했듯 이를테면 구석기 시대 말 ~ 신석기 시대 초의 '정착 채집사회'에선 절구 같은 실용품도 돌을 갈아 정성들여 만들었던 경우도 있다. '내구성 소비재'라면 공을 들여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한때 전기 구석기 유물 중 아슐리안형 석기(석기의 양면에 모두 날이 선 형태가 특징)를 기준으로 문화적 진보 수준을 평가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되지 않고 찍개나 거친 자갈돌 석기만 발견되던 [[동아시아]]를 문화적으로 뒤쳐진(culturally retarded) 상태로 평가하던 고고학자(대표적으로 모비우스[Movius])들이 있었으나[* 사실 모비우스 라인(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고 되지 않는 지역을 나누는 가상의 선)의 의미는 -- 미개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 인류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가설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 한동안은 인도 동부에서부터 이 아슐리안 석기가 발견되지 않았단 점을 근거로, 인류가 동아시아에 유럽보다 빨리 들어가지 않았나 추정했다. 유럽에는 아슐리안 석기가 발명된 뒤에 들어갔다는 것. 물론 이 석기에 맞는 재료의 부족이나 유행 때문에 바꿨을 수 있다.] [[1978년]]에 우리나라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주먹 도끼(흔히 양면 핵석기라 부른다)가 발견되었는데 연대추정시기에 논란이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으로. [[파일:external/www.chosun.com/200505040338_02.jpg]] 최초 발견자 [[그렉 보웬]]. 당시 주한미군이었던 그는 여자친구와 데이트하다가 전곡리 석기를 발견했다. 자세한 내용은 [[연천 전곡리 유적]] 문서로. 반면 일본의 자칭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는 일본의 석기시대 연도를 올리기 위해 가짜 유물을 만들어 파내는 자작극을 하기까지 했다. [[경기도]] [[고양시]]의 [[평택파주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도 구석기 시대 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559461&plink=ORI&cooper=NAVER|#]] 2014년에는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하진리 [[남한강]] 유역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약 1만 8천 년 전후의 것인 듯한 '''눈금이 새겨진 석기'''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해당 석기는 길이 20.6 cm, 너비 8.1 cm, 두께 4.2 cm의 길쭉한 규질사암 자갈돌에 0.4 cm 간격으로 눈금 22개를 새겼는데, 손으로 들고 다른 돌의 길이를 잴 수 있는 크기로 망치 등을 제작할 때 쓰였을 수도 있다고 발굴작업을 맡았던 연구원은 설명했다. 우종윤 선사문화연구원장은 "눈금 돌이 발견된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처음"이고 "구석기인들이 단순히 숫자 개념을 알고 있다는 것을 넘어 각종 사물을 측정하는 용도로까지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40617/64337862/1|구석기인들의 눈금자?… 충북 단양서 눈금 새겨진 돌 발굴]] 2020년 현생 인류가 발생하기 이전에, 뗀석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일찌기 불을 이용하여 가공하기 쉽게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922444?cds=news_my|#]]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